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크 맥과이어 (문단 편집) === 데뷔 이전 === 아마추어 시절에는 6피트 5인치의 큰 키에 투타 모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고교 졸업 후 [[몬트리올 엑스포스]]에 투수로 지명 후 입단을 제안받는 등 투수로 더 이름이 알려진 유망주였다. 대학명문 [[USC]]가 몬트리올보다 더 많은 장학금과 대우를 제시한 덕분에 1학년 때부터 팀의 중심 구원투수로 이름을 알렸다. '''[[랜디 존슨]]'''이 당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5만불 계약금 제안을 거절하고 1년 후배로 들어온 뒤에도 팀의 에이스는 맥과이어였으며, 미완의 대기인 존슨보다 투수로서 더욱 완성도 높은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자신의 파워를 살려 타격에만 전념하고 싶던 맥과이어는 코치와 상의 끝에 3학년때부터 투수를 그만두고 타격에만 전념하기 시작했다.[* 결코 투수로서의 성적이 부진해서 전향하거나 한 게 아닌데, 존슨 입단 이후에도 팀의 최고 투수는 맥과이어였고, 2학년때도 팀의 선발경기, 이닝을 가장 많이 책임졌으며 방어율도 2.78로 팀 1위였다. 존슨은 마이너리그 시절이나 그때나 엄청난 장신에 무시무시한 강속구만 있었을 뿐, 투수로서 완성도는 맥과이어보다 한참 떨어졌고 투구폼도 현재 이미지와는 다른 오버 스로우였다.][* 하지만 훗날 인터뷰한 바로는 존슨이 던지는 걸 보고 '''"아 저 정도는 되어야 투수를 할 수 있는 거구나"'''하고 타자로 전향했다고 한다. 물론 이는 존슨을 위한 립서비스성 발언일 확률이 높으므로 가려들어야 한다.] 타자에 전념하면서 32홈런으로 슬러거로서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고, 1984년 드래프트에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 1라운드 10순위로 지명되어 프로에 입문하게 되었다. 또한 그 해 미국 국가대표로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선발되어 활약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